p.70 은둔형 외톨이이라고 할 때는 그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병적인가 아닌가에 관계없이 '친밀한 인간관계' 이상의 사회참여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을 말한다.
p.111 표면상으로는 은둔형 외톨이나 정신분열증 모두 의사소통을 회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은둔형 외톨이는 대부분 실제로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다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줄 사람 하고만 수준 높은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사자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하기는 하지만 움직이려 하지를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의사소통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은둔형 외톨이 사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을 행하는 자체가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무리하게 대화를 시도하면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자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사용해도 되는 것은 자폐증과 정신분열증뿐이다. 그들의 자폐는 다른 사람을 멀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폐다. 정신분열증의 치료에서는 오히려 치료 상태를 만들고 은둔시키는 편이 회복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설이 있으며 많은 전문가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p.115 우울증으로 진단되는 주요한 증상은 불면이나 식욕 부진 또는 아침에 우울감이 강하고 저녁이 되면 회복되는 신체적 증상이다. 자신의 상태에 대한 생각도 미묘하게 다르다. 똑같이 우울한 기분을 호소해도 우울증 환자는 시기를 놓쳐 만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은둔형 외톨이는 하루라도 빨리 무엇인가를 해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갈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 은둔형 외톨이 상태에 수반되는 우울한 느낌은 그 자체가 변하기 쉽다.
p.135 나는 치료의 첫 단계에서 '정말 치료해도 좋은가?'라고 먼저 가족들의 각오를 묻는다. 당연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은둔형 외톨이 대응에는 다음의 세 가지 과정이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과정은 '치료'다. 둘째 과정은 당사자가 성인일 경우 '모든 원조를 끓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셋째 과정은 '현실 유지'다. 말하자면 '너는 이제 이대로 평생 틀어박혀 있어도 좋아. 살아있기만 해.'라는 식의 태도다. 이런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는 둘째 과정도 당사자가 성인이라면 이미 부모는 보호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당한 행위다. 본인이 취업이나 치료를 거부할 경우에는 부모가 동거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
p.137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가족들의 대응 목표는 당사자가 안심하고 은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역설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마음 편하게 해준다는 것에 대해 가족들은 반사적으로 저항을 느낄 것이다. 편안히 쉬게 한다면 평생 낫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결론만 먼저 보면 간단하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가족이 적절한 대응을 해도 당사자는 진심으로 안주하거나 안정되는 않는다. 자신의 상태에 열등감을 느끼고 빠져나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이미 본인이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 그 이상의 괴로움이나 갈등을 주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이다. 반드시 안심하고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아, 그럼 방치해 두면 되는군요."라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것도 오해다. 방치도 과잉 간섭도 본인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힌다는 점에서는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해롭다. 방치가 아니가 당사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한다. 촉진하라고 해서 초조하게 불안하게 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본인을 안심시켜야 한다.
p.147 나는 자주 '90%의 긍정과 10%의 갈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은둔하고 있는 자녀를 대하는 자세로서 의사소통의 90%는 당사자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메세지였으면 한다. 은둔형 외톨이를 백 퍼센트 긍정하는 것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삶에 대해 백 퍼센트 긍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건강하고 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때로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이대로 정말 좋은가?' 하는 회의를 갖는 편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까?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길 바라지만 10% 정도는 갈등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통원은 그런 건전한 갈등을 유지하고, 그 갈등에서 행동으로의 길을 열기 쉽게 한다는 의의가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최초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일수록 내심은 부모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것 같다.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겉치레인 경우가 많다. 은둔하는 당사자는 데체적으로 부모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나약한 소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은 전부 보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다가도 점점 치료에 관심을 보이거나 의사에 관해 질문하게 된다. 또 자신의 일로 부모가 통원을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부분에서 빛을 졌다는 감정이 싹트고 마음속에 쌓여 간다. 그 기분이 절정에 달했을 때 당사자도 통원을 시작할 것이다.
p.257 컴퓨터나 인터넷은 오랫동안 은둔 상태로 지내는 사람에게는 사회와의 접점을 찾아 주는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잇다. 즉 이메일이나 채팅은 가족외의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데 도움을 주 수 있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인터넷이나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은둔하게 되는 경우는 있어도, 은둔형 외톨이가 그런 것들의 의존증 단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사례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의존 증상을 보이는 정도라면 문제가 있지만 무엇인가에 몰입해 보는 것은 매우 소중한 체험이다. 왜냐하면 은둔 생활이 길어질수록 취미나 기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은둔 생활을 조금이라도 호전시키려면 아르바이트나 공부보다 장기적으로 열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채팅을 하는 자녀에게 그럴 여력이 있으면 일ㅇ르 하라고 말하는 부모들을 종종 보는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취미 생활에 사용하는 힘은 그일을 할 떄만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충분히 이해할 때까지 무엇인가에 몰두할 수 있다면 거기서 생긴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사회나 일에 대한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본인이 열중하고 있는 일에 간섭하지 말고 지켜봐 주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서 잘 정리한 책이다. 주변에 은둔형 외톨이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