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들 중에 한 명이 개성이 참 강하다. 이 아들은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다. 세상에 대한 여러가지 시선 행동 들이 꼬였다. 부모 말도 듣지 않는다. 선생님 말도 듣지 않는다. 모든 기준이 뒤틀려 있다. 부모의 기준 선생님의 기준 세상의 기준이 이 아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엄청 속이 상했다. 지난 2년 가까운 시간.
어찌 어찌 해서 중학교는 졸업했다. 졸업도 너무 힘들었다. 밤새 게임하고 학교에선 푹 잤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정신 맑아졌다. 그리고 밤에 또 게임.. 이런 시간이 흘러 일 년이 갔다. 외모도 감당하기 힘들다. 머리를 길러 앞머리를 내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얼굴을 알아 볼 수가 없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고 집에 오가고 등등을 한다. 어떤 사람도 감당해내기 힘든 친구다. 혼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해봤다. 그런데 이 아들은 부모에 대한 원망만 가득하다. 그래서 엄마가 모든 것을 수용해주고 있다. 그러면 바뀔지도 몰라서. 그런데 결과는 똑같다. 시간이 필요한지.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이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똑같은 외모와 학교에서 잠을 잤다. 결국 학교 선생님께서 지도를 할 수 없다고 학교 오시라고 한다. 자신은 자퇴를 하겠다고 한다. 지난 주말은 아내와 나 가족들 모두 힘든 시간이었다. 내 마음도 가슴이 아프고 쓰리고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목사님 설교를 듣다 문득 깨달음이 왔다. 아들에 대한 부모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에 대한 미래 말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고, 아들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확신했다. 난 여지것 아들에 대한 불평 불만만 마음가 생각 입 밖으로 내 뱉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온갖 모진 생각 불평을 했다. 저거 저러다 무슨 인생이 될*.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에게 준 마음은 달랐다.
아들의 이 모든 순간이 나중에 하나님을 위한 간증의 시간으로 돌아온다는 믿음과 확증이었다. 내 생각을 다르게 하기로 마음 먹고 결정했다. 목사님의 설교가 그랬다. 아픈 아들에 대한 엄마의 태도였다. 엄마는 아들에 대한 태도와 생각이 달랐다. 나 같으면 포기했을 것 같은데 그 엄마는 달랐다. 그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미래의 계획하심을 믿었다. 아들을 사용하실 것에 대한 믿음의 선포를 하고 믿기 시작하셨다.
나는 여기서 무릎을 끓었다. 난 빌었다. 어제 부활절 예배시간에 나를 위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당신이 정말 계시냐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저는 여전히 그 자리에만 있다고. 나를 어떻게 좀 해달라고.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주님은 나에게 임하셨다. 지금 내 마음에 선생님 마음에 시스템 마음에 들지 않는 아들에 대한 믿음의 확증을 가질 것을 말씀하셨다. 나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 크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으로 낳은 아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생각이 입술이 범죄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을. 나는 죄를 고백했다. 나는 회계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에 대한 믿음의 선포를 시작하겠다고. 하나님 지금 이 순간 과거의 순간 모든 순간들이 아들이 나중에 간증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음의 선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내 마음이 평안해졌다. 생각도 정리가 됬다. 이젠 아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믿음의 선포만을 믿음만을 가지기로 결정해야겠다. 아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해야겠다. 아들 넌 하나님의 아들이니 반드시 하나님이 널 사용하실 거야. 지금 너의 순간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올거야. 아들 그런 간증의 순간을 위해 지금 이 글을 남긴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들 사랑한다. 너의 앞날을 축복한다.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다. 수요일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고, 그 일이 너에게 소중한 간증의 순간일 것을 선포한다. 하나님 아들의 앞 날을 밝히 비춰주실 것은 믿습니다. 아들 어떤 선택을 해도 맞을거야. 예수님 안에서 축복한다. 이 모든 일이 이러우질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