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7 소크라테스는 자신과 대화한 사람들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은 자신에게 뭔가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훌륭한 진리를 자기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질문을 통해 지혜를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누구도 대신 답할 수 없는 질문에 질문을 던지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회복하는 방법이자 지혜를 얻는 태도다.
p.39 삶이 괴로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 안으로 은둔할 때 어떤 동요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유지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명상에 잠겨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 발생한 일들에 초연할 수 있었던 이유다. 후기 스토아 철학자이자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에게 자신의 혼보다 더 조용하고 한적한 은신처는 없다.”
p.60 그리스어 ‘이데아(idea)’는 원래 ‘본다’라는 의미의 ‘이데인(idein)’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이데아는 모양, 모습을 뜻하며 ‘형상’이라고 말한다.
p.76 사람을 이성과 감성으로 구분하는 관점의 시작은 그리스로마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서로 대립하는 두 명의 신이 있다. 바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다.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인 아폴론은 음악과 시, 예언, 의술, 궁술을 관장한다. 태양신으로서 ‘빛나는 자’라는 뜻의 ‘포이보스’라는 별칭을 가졌으며 빛, 이성, 질서, 분별, 균형, 예지력, 예술 등을 상징한다. 반면에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의 아들인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으로 다산과 풍요를 관장한다. 기쁨과 광란. 황홀경의 신으로 무질서, 감성, 도취, 황홀, 광기, 강한 생명력 등을 상징한다.
p.103 육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고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플라톤이 말한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첫걸음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체가 제 기능을 온전하게 발휘하도록 관리하자.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나의 진정한 본래 모습이 아닌 타인에게 맞춰진 모습으로 스스로를 뜯어고치려 하지 말자.
둘째, 마음의 허기를 정신적으로 채우는 것이다. “마음이 허해서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우울한 기분이나 불안, 허전함을 음식을 먹으며 채우곤 한다. 그러고는 자책감과 우울감, 자기혐오를 느낀다. 불안하거나 우울하다면 식욕을 채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인간관계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고 취미생활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중요한 것 허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만족감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려 노력할 때 공허라고 외롭고 혼란스러운 마음의 그늘이 걷힌다.
셋째, 몸 안에서 들리는 온갖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침묵과 고요를 느끼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방해하지 않고 고독 속에서 소란스러운 세상을 외면하라.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몸을 돌보는 일이 소중하듯이 영혼을 돌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나치게 바쁘고 복잡하며 산만한 삶은 우리의 영혼을 메마르게 한다.
플라톤이 말한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란 바로 자신이라는 감옥 안에 갇힌 어두운 영혼에 빛을 비추어주는 일이다. 플라톤은 철학자의 영혼은 몸을 최대한 하찮게 여기고 그것으로부터 달아나 그 자체로 있기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철학자는 몸에 관심을 두지 않고 되도록 몸에서 떨어져 혼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끈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건강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육체를 관리하라. 영혼을 스스로 어루만져 줄 때 비로소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들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로 나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